DEI GRATIA


DEI GRATIA, 2008, 8m 30s, single channel video.


Exhibitions:
A Forbidden Land, Miro Space (2008)
Young Korean Artists, MMCA (2008)
Oh, Pure Love, Daegu Art Museum (2013)


어느 날 길 모퉁이 쓰레기들 사이에서 죽은 참새를 발견했다. 주변에 버려진 상품박스들과 함께 놓인 작은 죽음의 풍경 앞에서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참새 옆에 널부러져 있던 스타벅스 커피컵에 참새 시체를 담아 작업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참새의 죽음이후를 몇주동안 촬영하기 시작했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곡 ‘맑고 푸른 도나우강’이 배경으로 깔리는 영상에는 회전하는 원판 위에 놓인 반짝이는 물질들, 여러가지 상품들, 그리고 죽은 참새가 등장한다. 이 장면은 곧 기호와 물질, 생명과 죽음, 순환과 변화라는 은유가 한 자리에 공존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인간에게 작동되고 있는 가치 질서의 불가항력이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황금색 물질은 전통적으로 인류가 사용해온 교환방식에서 결정 된 가치의 기준을 생각나게하고, 인간의 생을 지속시켜주는 여러가지 상품들은 마치 우리에게 익숙한 광고영상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본적 생태계를 떠오르게 한다. 반면, 그 사이에 가만히 놓인 죽은 참새는 원판 위에 등장하는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유형화 된 가치들을 무형화 시키며 반짝이는 황금이나 상품박스들과 확실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회전하는 원판 위에서 참새는 죽음이 곧 끝이라는 생명으로서의 가치가 종료된 후의 허무와 무가치함을 드러내지만 사실 죽음에서 부터 시작되는 물질의 순환을 통한 새로운 시작의 잠재성을 품고있다.

영상 후반부, 점점 부폐하는 참새의 육신에서 수많은 구더기들이 탄생하는데 죽음이 새로운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생태적 진리를 터트린다. 원판 위의 모든 것들의 관계는 죽음 앞에 그 모든 가치나 기호가 기능하지 않는다. 죽은 참새는 생명을 잃고, 더 이상 의도를 갖지 않으며, 생산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비-작동성’ 속에서 오히려 가장 강력한 잠재성이 발생한다. 그것은 구더기의 형태로, 즉 새로운 생명이라는 전혀 다른 ‘능력’으로 태어난다. 구더기의 탄생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참새의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인식이 가능해질 수 있는 시작이다. 교환되고 대체되며 순환되는 상품들이 상징하는 자본의 기호체계는 구더기의 등장으로 완전히 해체되어버린다. 그 어떠한 가치와 질서도 구더기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참새는 기능의 반복 속에 진입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자체로 소멸하는 존재이자, 동시에 새로운 생명의 발현으로서의 존재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 참새의 죽음은 어떤 기호로도 환원되지 않는 무능력 (impotentiality)을 통해 인간이 구축해온 모든 가치체계가 품고있는 무가치성의 잠재성을 말하고 있다. 

* DEI GRATIA 는 신의 은총이란 의미로 신성하고 절대적 권위의 상징을 뜻하는 문구다. 유럽의 일부 군주국가에서 군주의 칭호로 사용되어졌다. 현재 영국 동전에 일부 사용되고 있다.